자전거 여행 - 경주에서 안동으로 (2)

영천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저물었고, 허벅지와 엉덩이는 비명을 마구 질러대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자는 의견을 따라 일단 숙소로 정한 모텔 근처에서 만년 보양식인 삼겹살과 소주 한잔으로 배를 채웠다. 먹기 전에 물수건으로 손을 닦는데, 으~ 더럽게도 물수건이 아주 시꺼매지더라. 지금 내 방 바닥을 닦아도 그 정도로 더럽지는 않을 듯.
숙소에 들어와서는 9시가 되기도 전에 뻗어버렸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주니 이게 저녁과 함께 먹은 소주랑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온 몸이 노곤노곤하게 녹아서 그대로 다음날 아침까지 침대에 달라붙어버렸다 (침대에 질질 흘린 침과 함께).

#둘째날
원래는 아침 6시 정도에는 일어나서 전날에 가지 못한 거리를 채워야 했지만, 느긋느긋하게 9시에 숙소를 나서서, 꼬박꼬박 아침까지 챙겨먹고 10시가 되어서야 영천 시내를 빠져나왔다.
악몽의 4번 국도와는 좀 다르게 28번 국도는 우리가 상상한 자전거 여행을 그대로 보여주는 도로였다. 양 옆으로 카페트처럼 깔린 논밭들, 길가의 코스모스들, 가끔 털털거리며 지나가는 경운기까지. 영천 시내를 빠져나오니 길가에서 여기저기서 포도를 팔고 있었다 - 그것도 거봉으로. 우리 셋다 원래 먹는 것에는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려서 포도를 파시는 할머니께 포도 몇 송이만 팔아달라고 했더니 박스단위로 팔아야 된단다. 어쩌지 어쩌지 하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상품으로 정렬하다가 조금씩 떨어져 내린 포도알들을 모아 놓은 것을 우리들에게 먹으라고 내 놓으셨다. 그것도 공짜로! 역시 여행은 이런 재미다. 알고보니 할머니도 우리같은 나이 또래의 손자가 있다고 하시더라. 꿀맛 같은 거봉으로 배를 가득 채우고 할머니 짐 나르시는 것 조금 도와드리고 다시 의성군을 향해 출발.

28번 국도가 도로는 한산하고 괜찮은데 오르막길이 장난이 아니었다. 끝이 안 보이는 오르막길. 말이 오르막길이지, 산에다가 살짝 길을 내어 놓은 것 뿐이었다. 1~2km정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자전거 타고 여행을 하는 건지, 등산을 하러 온건지,,, 하지만 [오르막 차로 끝]이란 표지판을 보았을 때의 그 감동! 컵라면을 먹을 때에는 반드시 3분을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내리막길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르막길의 끝까지 올라야 한다. 좀 다른 점이 있다면 라면은 일단 3분을 기다리면 3분보다 오래 먹지만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보다 빨리 지나간다는 것. 하지만 내리막길은 짧은 만큼 그만큼 더 즐거우니까.

근데 내리막길은 양날의 검이라서 힘도 안 들고 재밌는 반면, 그만큼 위험하다. 조금이라도 방심해서 속도를 내다 보면 어김없이 자빠짐을 경험할 수 있는데, 솔직히 자전거 여행하는데 한 번도 안 넘어지면 뭔가 하나 빼 먹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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